자신이 이전에 편찬한 지도,
청구도와 동여도 그리고 이전의 각종 지도와 지리지를 참고해서
근대 이전에 제작된 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편찬했다.
보통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정호 자신이 전 국토를 유람하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그가 그러한 방법으로 지도를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한반도를 세번 돌고 백두산을 여덟번이나 오르며 정확하게 실측하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설명은 지도가 흥선대원군 때문에 사라졌다고 당당히 사기를 쳤던 최남선의 글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을 듯하다.
그러나 필요한 지역만 답사했을 가능성은 있다.
>>"팔역의 산천을 샅사이 답사함을 사양치 아니하였으며... 백두산만을 닐곱 번 올나갓으며 이를 위하여 수십 년 과객질을 하얏다" -고산자를 회함-, "그동안, 팔도를 돌아다닌 것이 세 번, 백두산에 오른 것이 여덟 차례라 한다." -조선어독본-
>>다만 객관적으로 김정호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들은 모두 김정호가 실측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3가지인데, 청구도에 대한 서문인 최한기의 '청구도 제'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 열람 하였다", 신헌의 '대동방여도 서'에는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를 등을 참고"하였고,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는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다.
>>전국을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마도 일본의 이노 타다타카를 모델로 쓴 듯한 느낌이 든다. 에도 근방의 상인출신이었던 이노 타다타카는 수차례 실측여행을 떠났고, 남쪽의 큐슈부터 북쪽의 홋카이도에 이르는 지역을 직접 측량하여 일본 최초의 실측지도인 <대일본연해여지도>를 편찬하였다고.
.사실 지도 안에 담긴 정보는 너무나 상세하기 때문에 직접 그 정보를 전부 스스로 모아서 지도에 담을 수는 없다. 대동여지도 실물의 크기는 높이 7미터에 가로 3미터 반인 만큼 거대하다. 더불어 여러 판으로 나뉘어 있고 이 여러 판들을 펼쳐 놓아야 비로소 거대한 지도가 완성된다. 때문에 지도 전체를 전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직접 보고싶으면 수원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 구내 지도박물관을 방문해 보라. 대동여지도 전체를 박물관 바닥에 전시해 놓고 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는 10리마다 표시를 해 두어서 실용적인 목적을 꾀하였고, 더 나아가 여러 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삽입하는 등,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조선시대 당시의 생활상을 꼼꼼하게 알 수 있는 훌륭한 정보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10리는 직선거리 10리가 아니라 실제 거리 10리이다. 산이 험할수록 촘촘하게 찍혀있다. 또한 김정호는 "대동지지"라는 지리지도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도 숭실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대동여지도의 목판 일부가 남아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대동여지도 목판 11매가 보관 전시되어 있다.[5] 이 중앙박물관 목판은 초창기 해당목판에 잘못된 기록을 수정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정호가 직접 만든 초판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더 많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대동여지도만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그 외에도 많은 지도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지도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