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는 몇 명인가?
사망자는 몇 명인가?
5.18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관을 구할 수 없었어.
학생들이 두꺼운 베니어 판을 구해다가 잘라서 그것으로 관을 만들고,
미처 수의를 못 만드니까 당목으로 둘둘 감아서
태극기 한 장씩을 덮어 갖고 묶고 한 것이 도청 마당으로 하나 가득이여.
나중에는 돈 나올 데가 없으니 관 살 돈도 없제,
당목 살 돈도 없제,
그래 교회에서 우선 30만 원을 얻어서 감당하게 했제.
-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대모로 알려진 광주YWCA 회장 조아라 여사의 증언.
<이야기 여성사: 한국 여성의 역사 1권>.
- '조아라: 나는 아직도 광주가 생생합니다
- 광주민주화운동의 대모' p209~210.
5월 31일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공식 피해자는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 등
합계 17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127명의 민간인, 109명의 군인, 144명의 경찰이 다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를 믿는 광주 시민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너무 많이 죽어나가 일일이 세는 것조차 힘들었다.
훗날, 5.18 기간 중
오랫동안 집을 떠난 뒤로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이들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만 2천여 명에 달할 거라는 얘기도 있었으나
현재 확인할 길은 없다.
5.18 당시 사망자 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공수부대원들이 사상자 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나오는 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암매장시켰기 때문이다.
자 2천 명 중 사망자가 2명이었으며,
당시 국군에서 일한 친구가
5.18 희생자를 832명으로 확인했다고 들은 것을 근거로 해
사망자는 무려 8백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신군부의 발표에서조차 사망자 수는 점차 늘어났다.
문제는 사망자 수가 아닌 학살 자체를 가벼이 보는 신군부의 태도이다.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7월 22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광주사태는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마이애미 폭동' 수준이다."
라고 밝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政治人(정치인) 學生利用(학생이용)없어야
동아일보 | 1980.07.25 기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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