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알아보자_1


임진왜란의 개요


한자

壬辰倭亂 


영어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 1598)


중국어 

萬曆朝鮮之役 , 万历朝鲜之役 (만력조선지역)


일본어 

(1910년 이전) 豊太閤の朝鮮征伐 (호타이코의 조선정벌)

(1910년 이후) 文禄・慶長の役 (분로쿠・케이쵸의 역)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 음력 4월 14일부터

1598년(선조 31년 무술년) 음력 11월 19일까지


7년간 조선과 명나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국제 전쟁.


흔히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는 경계로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사에 중대한 분수령이며, 

일본의 정권교체와 장기적으론 중국대륙의 왕조교체까지 

동북아 삼국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전쟁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 합병' 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수백년 만에 통일국가가 된 최초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던 전쟁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절대적인 패권국가였지만 

슬슬 몰락해가던 명, 그리고 그 휘하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조선이 추락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상승세에 있던 일본의 대비를 보여준 전쟁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국통일과 임진왜란을 계기로 중국인들, 

그리고 특히 조선인들은 '일본은 무시못할 나라'라는 공포감과 존재감을 얻었다.

또한, 도자기 기술 약탈 등 문화적 성과 역시 있었다.



전화를 고스란히 당한 조선은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이후 급부상한 청나라의 침공,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북방 여진족들이 조선과 명의 지배로부터 떨어져나갔으며 

특히 명은 이자성의 내란과 북방의 여진족으로 나라가 망했다. 


반면 일본은 패전을 하긴 했지만 

전란이 끝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경제 활성화 등에 따라 

거진 순식간에 복구하다시피 했으며 

오히려 겐로쿠 시대 등의 전성기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의 쇠망 혹은 멸망이 

임진왜란이라는 단일한 사건만이 중대하게 작용하여 일어났다는 해석은 

임진왜란의 여파가 일본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타국에는 상대적으로 과장하여 크게 일어났다고 보는 

일본 중심 사관이 뿌리뽑히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패퇴 직후

도요토미 정권이 1,2년도 채 안되어 붕괴되었지만, 

명나라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50여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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