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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제32대 왕 우왕 막장군주



결국 국왕은 정치에의 흥미를 잃고 

사냥, 음주가무, 엽색으로 소일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질풍 노도의 치세. 

특히 사냥도 사냥터에서 안하고 

민가에서 아예 말 달리며 사냥을 했을 정도며 

그렇게 말을 달리다가 맘에 드는 이쁜 여자가 있으면 

즉석에서 그 여자 집으로 들어가...


이런 비행을 보다 못한 신하들이 간언을 하기도 했으나 듣지 않았다. 

하는 짓이 완전히 할아버지 충숙왕과 큰아버지 충혜왕 뺨을 친다. 


실제로 최영이 이걸 가지고 충언을 하자 

충혜왕과 충숙왕 얘기를 했는데 

이때 최영은

"충혜왕께서 색을 좋아하신건 사실이나 남들이 안보는데서 했고 

충숙왕께서는 놀기를 좋아해도 때를 골라서 하셨는데 

전하께선 법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고려사 최영 열전)




우왕이 즉위했을 때 

자기 아버지 공민왕의 제4비 정비 안씨가 

젊고 아름다웠으므로 정비를 두고 

"나의 후궁들은 어찌 모씨(母氏)와 같은 이가 없는가?"라 하며 

늘 희롱하였다고 한다.


자기 큰아버지 같은짓을... 

자주 정비의 처소에 들렀는데 

혹은 하루에 두 세 차례 가기도 하고 

혹은 밤에 가기도 하였으며, 

혹은 들렀다가 들어가지 못하니 추한 소문이 외부에 파다했다고. 


우왕이 어느 날 정비의 처소에 갔으나 

비가 병이 들어 머리를 빗지 않았으므로 만나지 않았는데 

정비가 동생인 판서 안숙로(安淑老)의 딸을 우왕에게 보이자 

우왕이 맞아들여 현비(賢妃)를 삼으니 사람들은

 "정비가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감추려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출처:고려사 우왕 열전)


→그러나 실제로 우왕이 이런 행동들을 보였다고 해도 

고려사가 우왕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정비 안씨의 일화도 

후대 연산군과 월산대군 부인 일화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우왕은 어릴 때 어머니와 유모를 잃었고, 

할머니 명덕태후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의붓 어머니뻘이 되는 그녀에게 모성애를 갈구했을수도 있는 일이고, 

생각해보면 우왕이 즉위했을때의 나이는 겨우 10여세였다.






이렇듯 정치가 권신들에게 왜곡되어 공공성이 파탄난 상황에서 

군부 역시 재정난과 몽고식 부호제의 영향으로 사병집단화 되어 있었고, 

장수들 역시 부패하고 무능한 자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내륙지방까지 학살과 약탈, 납치가 자행되었으며 

수도 개경까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최영이 재건해낸 수군이 격파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왜구의 침입 격퇴에서 최영과 이성계, 최무선의 화포가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이성계는 왜구 격퇴 과정에서 

최영에 버금가는 무장으로서의 입지와 명성을 굳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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