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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君所畏者, 史而已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 뿐이다. ㅡ 연산군


조선의 10대 왕. 

성종의 장남, 어머니는 폐비 윤씨다. 

본관은 전주 이씨.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런 막장은 거의 없다. 

충혜왕을 비롯한 조선 이전의 일부 연산군을 초월한 

막장 오브 막장 임금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산군이 그나마 괜찮은 편인 것도 아니고… 

그리고 사실 그런 임금이 많은 편도 아니다. 

게다가 충혜왕은 누구라고 콕 집을 것 없이 

그냥 다같이 미쳐 돌아가는 막장 분위기 속의 막장 임금이었던 반면, 

연산군은 잡다한 문제가 있긴 했어도 

어느 정도 균형에 맞춰 멀쩡하게 돌아가던 정치판에서 

뜬금깽판을 쳐버렸으니 더욱 막장일 수밖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연산군을 기점으로 

조선이 이전의 건강함을 점점 잃어갔으며, 

이후 즉위하는 조선 왕의 능력 부재로 인해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문정왕후의 외척 세도를 거쳐, 

결국에는 임진왜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평가한다.

문제점도 있었고 뻘짓도 있었지만, 아직 망할 나라는 아니었다. 



실제로 임란 이후로도 300년을 더 갔고. 

연산군의 막장짓에 비례해서

조선왕조상 왕권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폐위된 2년간일지도... 


조선 역사 중에서 묘호를 받지 못한 4명의 왕들 중 하나이나, 

본인에게 딱히 별다른 권력이 없던 정종(공정왕), 

성인도 되기 전에 작은아버지에게 강제로 내몰린 단종(노산군),

실리외교와 분조 지휘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빛나 보이는 등의 재조명으로 인해 

현대에 긍정적으로 재평가된 광해군과는 반대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막장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물론 나라에 해를 끼친 왕이야 조선 시대에도 꽤나 많았지만, 

그 왕들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최소한의 업적은 있거나, 

무능했으나 일제와의 타협을 끝까지 거부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공이 있거나 등의 최소한의 실드 칠 거리라도 있는데,

연산군은 그조차도 없다. 

즉위 초기에는 일을 좀 잘했다는 정도가 있으나, 

그 뒤에 저지른 행동들이 너무나도 잔혹하다.


다만 연산군이 본격 막장 놀자판으로 막 나가기 시작한 건 

재위 10년째의 갑자사화 이후로, 

그 이전까지는 무오사화의 피바람이 있긴 했지만 

행정적으로 국가는 그럭저럭 운영해 나아갔다. 

재위 후반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전체 재위기간 중에는 오히려 평균 이상으로 집무했던 시기가 더 길었다는 것.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정세력이 편찬한 《연산군일기》에는 약간 의심되는 내용도 있는데, 

가령 연산군에게 엿 먹은 대비가 다음날 태연히 연화대에 구경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방구석에 처박혀 떨어야 할 사람이 저러는 둥 

정상적 심리상태의 정황과 어긋나는 이상한 점이란 것인데, 

전문이 이러한지라 반대로 연산군이 둘러댔다고 보기도 한다.


"대비께서 연화대를 구경하려 하시니,

놀이하는 사람을 급히 대궐로 들여보내라.

옛 사람이 온실의 나무조차 말하지 않은 것이 정말 이유가 있는 것이니, 

이런 일들은 외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지 말라."


게다가 설령 왜곡된 부분이 있다 해도, 

"알고 보니 연산군도 착했다"고 봐서도 안 된다는 것에 주의하자.


연산군이 시도한 무리한 왕권의 강화는 신하들이

후대 왕에게 압력을 가하는 빌미가 되었고, 

무엇보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이러한 신권(臣權)의 압박에 제대로 시달려야 했다.


중종의 경우, 형처럼 처용무라는 춤을 좋아해서 즐겨 추었는데, 

신하들이 처용무(處容舞)가 연산군이 즐겨 추던 춤이라고 간언해 

중종이 춤도 못 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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