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는 흥선대원군 때문에 고문사가 아니라 과로사로 죽였다.'에 해당되는 글 1건

김정호..


고산자 영화를 보고 좀 알아보게 되었다


역사와 지도 얼마나 난 무지한가 해서말이다.


흔히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후 이것이 대원군에게 알려지자 대원군에 의해 옥중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이야기의 근원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어 독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실 최초는 지도에 관심이 많았던 최남선의 '고산자를 회함'인데... 그 최남선이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독본에 참여했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다.) 총독부의 주장인 즉슨 김정호가 지도 제작과 지리학에 재능이 많았으나 국가는 지도 제작에 전혀 뜻이 없어 김정호 자신이 직접 전 국토를 답사하여 지도를 만들었지만, 쇄국정책을 취하던 흥선대원군이 이에 분노하여 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며 대동여지도를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감옥에 가뒀고 결국 김정호는 옥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후 조선어 독본에서는 일본에서 대동여지도를 입수 러일전쟁때와 이후 땅 도둑질토지조사사업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했었고. 즉 조선인들이 버린 김정호의 가치를 일본인이 발견해서 러일전쟁에 기여했다고 조선어 독본은 쓰고 있다.(출처 : 조선어 독본)


일단 조선어 독본 자체가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위의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앞뒤가 하나도 맞지않다. 관련 내용을 잘 정리한 역사만화. 보면 좋다. 일단 조선어독본에서는 김정호가 잡혀갈때 딸도 같이 잡혀갔다고 쓰고 있는데 일단 조선이 연좌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모같은 특별범죄가 아니라면 연좌제를 적용하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김정호가 수감되었다는 기록자체가 전무하다. 《고종실록》·《승정원일기》·《추국안》어디에도 김정호가 투옥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거기에 고문당해 죽었다면 '물고'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주변인들의(유재건-이향견문록) 기록은 모두 그냥 죽었다고만 나온다. 거기에 후술하겠지만 대동여지도 제작에 도움을 줬던 신헌은 규장각이나 비변사에서 국가중요기록까지 내와서 김정호에게 제공했는데 만약 김정호가 지도제작으로 투옥되었다면 신헌의 목이 날아갈 일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지도 제작에 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였던 나라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처음 부임할때 해야할 일을 정리한 부임육조에서 부임첫날에 할 일로 관할고을의 지도작성을 말하고 있다. 이는 중앙집권의 강화와 북방 개척 등의 정치적, 군사적 목적에서였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과 국학자들을 통해서 경제적,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 제작도 이뤄졌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이런 실학자들의 실용적 관심에서의 지도 제작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대원군은 군사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정확한 지도야말로 근대 군사학에서 꼭 필요했을 터. 절대로 태웠을 리가 없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흥선대원군이 분노해서 감옥에 갇힐 정도면 지도는 물론이고 목판은 모조리 사라져야 하는데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그것도 단순한 목판이 아니라 여러번 수정 작업의 흔적이 있는, 그러니까 김정호가 처음 만들었던 목판이 말이다. 이런데도 제대로 확인도 안해보고 복사 붙여넣기를 해서 '지도를 불태워 없애고 목판을 도끼로 부쉈다'고 써놓은 위인전까지 있었는데 당연히 현대에도 남아 있는 대동여지도 목판은 뭐냐는 질문이 나왔고, 위인전 출판사들은 확인후 수정할 생각은 안하고 해당 목판을 복원된 복제품이라고 둘러댄 바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어 위키백과에까지 당당히 등재되어 있었으며, 영어 위키백과에도 이 구라가 적혀 있었다. 현재는 둘 다 제대로 수정된 상태.


김정호에 대한 당대사람들의 기록은 최남선의 주장과 완전히 다른데 일례로 대동여지도를 만들 당시 강화도 총융사였던 신헌이 쓴 대동방여도서(大東方輿圖序)라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 서문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것으로 추측되는 기록이 있다.


나(신헌)는 일찍이 우리나라 지도에 뜻을 두고 비변사와 규장각에 소장된 것, 오래된 집안에 좀먹다 남은 것들을 널리 수집하여 증정하고, 여러 본들을 서로 참고하고, 여러 책들에 근거하여 합쳐서 편집하였다. 이리하여 김백원에게 물어 그것을 맡겨 만들게 하였다. 가리켜 증명하고 입으로 전해주기를 수십 년이나 하여 비로소 한 부가 만들어졌는데 모두 23권이다.


여기서 김백원의 백원은 김정호의 호였고 대동여지도도 23권(22첩+색인1권)[7]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 신헌이 말하는 김백원은 김정호이고 그가 만들었다는 지도는 대동여지도로 추정된다. 이것으로 추측컨대 우리에게 알려진 것처럼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이 만든 지도가 아니라 반대로 국가의 지시로 비변사, 규장각 등의 중요자료를 수집해 만든 지도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중앙박물관 목판에는 조각기법들이 여러개가 발견되어(즉 제작자가 여러명이였다)(출처:#) 대동여지도는 광범위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지도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당대사람들의 평가와 남은 유물로 추정컨대 김정호는 옥사가 아니라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고 적어도 지도제작때문에 옥사한 건 사실이 아닌것으로 확인된다.사실 흥선대원군 때문에 죽었긴 죽었다 카더라 고문사가 아니라 과로사로


어쨌든 그로 인해 <조선어 독본>의 김정호 이야기가 생구라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최근에는 대동여지도가 직접 발로 다니면서 그린 게 아니라는 연구 논문도 발표되는 한편, 2009년 한국 사학계에서 19세기 동양의 지도 제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린이나 학생용 서적에도 김정호의 옥사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내용을 싣는 수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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