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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도적 홍길동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때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시오소서"

- 조선왕조실록 1500년(연산군 6년. 경신년) 10월 22일(계묘) 기사 -



의금부의 위관(委官) 한치형(韓致亨)이 뢰기를, 

"강도 홍길동(洪吉同)이 옥정자(玉頂子)와 홍대(紅帶) 차림으로 첨지(僉知)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官府)에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그 권농(勸農)이나 이정(里正)들과 유향소(留鄕所)의 품관(品官)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체포하여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변방으로 옮기는 것이 어떠하리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39권, 연산 6년 12월 29일 (기유) 기사-


본래는 실재했던 전국구 단위 도적.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편에서 중종편에 기록되어 있다. 

정승 또는 판서를 지낸 위의 소설과는 달리, 

홍길동의 아버지는 조정의 고위직과는 거리가 있는

종성절제사(鍾城節制使)를 지낸 무관이었다.

[홍상직은 고려 말 권신이였던 염제신의 사위였다. 

염제신의 아들이면서 이인임의 수족이였던 염흥방과는 처남 매부 관계라서 

염흥방 일파로 몰려 아버지 홍징과 다른 형제들은 처형됐고 

홍상직은 처가의 힘을 빌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전라도 장성으로 은둔해 터를 잡았다. 

사족으로 홍상직의 외손자는, 연산군 시기에 영의정을 지내고 

후일 반정에 가담하는 유순(조선)이다.]


홍길동의 가문이 실세가 된 것은 형들의 대에 이르러서인데 

홍길동 위로는 적자 출신인 형 홍귀동과 홍일동(1412?~1464)이 있었다. 

홍일동은 세조 찬위에 참가해 원종공신 2등훈에 책록됐고 

실제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유명한 대식가이기도 했다.

[동시대 사람 서거정이 지은 <필원잡기>를 보면, 

그 사람은 진관사에서 생활할 때 

떡 한 그릇, 국수 세 주발, 밥 세 바릿대, 두부국 아홉 주발을 먹었다. 

그 사람이 산 아래 왔을 때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홍일동은 찐 닭 두 마리, 물고기국 세 주발, 생선회 한 쟁반, 술 마흔 잔을 먹었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홍일동은 사실임을 아뢰었고 세조는 장사(壯士)라고 말했으나 

평상시에는 미숫가루를 먹고 맑은 술만 마셨다. 밥을 먹지 않았다.

1464년에 그 사람이 명 사신을 접대하다가 홍주에서 폭음으로 죽었을 때

사람들은 배가 터져 죽었다고 생각했다.]



홍길동은 전국구 도적패를 이끌었는데, 평범한 도적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부하 중에서 일부가 

벼슬아치와 결탁하거나 가끔씩 당상관으로 행세했다는 기록을 봐서는, 

높으신 분들과의 친목 관계를 잘 이용했던 인텔리 범죄자이면서

검계의 폭력배들을 이끄는 무력까지 겸비한 능력자였다.

덤으로, 위의 의적과는 다르게 중년에서 할아버지로 추정된다

[단 검계라는 명칭이 기록에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홍길동보다 훨씬 뒤인, 200년 뒤 숙종 통치기때이다. 

물론, 명칭의 차이는 있지만 실재한 홍길동의 행적은 

이후 여러 검계와 거의 같거나 오히려 상회한다. 검계의 전신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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