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왕후

2.홍국영과의 갈등


늘 각별히 정조를 내조하였으나 

정조가 총애한 신하인 홍국영과 대립한 적이 있었다. 

홍국영은 자신의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이가 원빈 홍씨였다.

후궁을 들이기 직전인 1778년(정조 2년),

박재원이 효의왕후의 불임을 치료하기 위해 양의를 들일 것을 건의했다. 

홍국영은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정조는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국영은 그의 여동생이 왕자를 낳아서 

더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믿고 있었지만, 

그녀가 얼마 못 가 갑자기 사망하고 만 것. 

격분하여 이성을 잃은 홍국영은 자신의 여동생의 죽음 뒤에 

효의왕후가 있다고 생각하여 효의왕후를 모함했고, 

함부로 효의왕후의 궁녀들을 잡아다 문초를 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정조는 효의왕후의 편을 들어 억울함을 풀어 주었으며 

효의왕후를 모함한 홍국영을 귀양보냈다. 




원빈 홍씨의 입궐 과정을 

그린《숙창궁입궐일기》에서 효의왕후는 더위를 핑계로 

원빈의 인사 받기를 며칠이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효의왕후와 홍국영의 갈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후에는 대체로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효심이 깊어 시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시할아버지인 영조는 

물론 의붓 시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영조 역시 손자며느리인 효의왕후를 총애했다. 


뿐만 아니라 시고모인 화완옹주가 그녀를 몹시 괴롭히고 

정조와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온갖 이간질을 해댔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텼으며 그녀에게 예를 갖췄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을 올릴 때는

자신이 직접 반찬의 맛을 보고 올렸다고 한다. 

또한 검소한 걸로도 유명했다. 

수진궁이나 어의궁에서 쓰고 남은 재물이 있으면 

친정에 보내는 왕비도 많았는데, 

효의왕후는 이 재물을 공물로 생각하고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임인 것만 빼면 완벽한 왕비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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