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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비판 : 사민 정책



4군 6진 개척 당시, 

삼남 이남 지방의 백성들을 강제 이주 시키는 "사민 정책"을 실시했고, 

강제로 징발된 백성들은 북쪽으로 가는걸 회피하기 위해 

심지어 자해까지 벌였지만, 

세종은 자해한 백성들까지 강제로 북쪽으로 올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돈있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주한 백성들은 그 날로 수천 명이 죽었다. 

추운 날씨도 날씨고, 

야인들도 야인들이지만, 

중국사신들에 대한 접대비용으로 수탈당했고, 

흉년이 겹치고 역병까지 돌아 또 수천명이 죽었다. 

세종이 개척한 4군은 세조 이래 포기되어 폐4군이라 불릴 지경이었다.

당시 그 때문에 세종대왕에 대한 원성이 아주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원성은 높았지만, 

당시 변방의 사정상 사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정당화 시키는건 어디서 많이 본 논리지만 

세종대왕은 북방 개척을 위해 고려시대 동북 9성과 관련한 역사를 깊이 연구했고,

'산맥'을 방어선으로 삼으려 했던 동북 9성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다. 

세종은 안정된 영토 확보를 위해서는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치고 올라가 

그 지역의 인구를 늘려 야인의 침입에 대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그만큼 북방 안정이 시급했기에,

세종대왕 본인도 백성들의 원망을 감수한 것이다. 

당시 사민정책이 지나치다는 신하들의 진언에 

본인이 직접 "임금이 백성의 원망을 피해서야 되겠느냐!" 라고 

버럭했을 정도로 그 집념은 대단했다. 

실제로 4군은 비록 실패했지만 6진은 세종대에 성공했다

→ 후일 '니탕개의 난 같은 대변란이 함경도의 중심지역인 함흥평야까지 미치지 못한 데는 6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비록, 엄청난 고생과 희생을 들여서 얻어낸, 

넓이도 작고 생산성도 떨어지는 땅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농사조차도 못하는 그 시대로서는 아주 쓸모없는 땅이다.




세종대왕은 한반도를 완전하게 조선의 영토로 만들었다.

다만 함경도에 대한 차별이 이어져 마침내 임진왜란때 임해군과 순화군이 일본에 넘겨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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